요즘 하우스 복숭아 수확이 한창이다. 노지 복숭아도 제법 영글어 한 두 개 정도는 맛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여름이 한껏 무르익어 가고 있다. 과일나무를 키우다 보면 과일나무들이 보다 싱싱한 열매를 위하여 다 익지도 않은 다른 열매를 스스로 바닥에 떨어뜨리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과일나무가 자신을 지키고 다른 열매들을 맛있게 키우기 위해 포기하는 열매들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진정한 나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이렇게 말을 시작하면, 대를 위한 소의 희생쯤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포기하겠다는 것은 정말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다. 나라고 느끼고 나에 대한 정의로 가득했던 조그마한 세계의 자그마한 나라는 존재의 생각을 버리겠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정말 거창한 말이 아닌가!
조그마한 나로부터의 탈출
영화에서 그려지는 소시민(小市民)의 일상은 세상을 깔보지 않고 조그마한 것들에게서도 행복을 느끼며 자신의 주변의 것을 소중히 하는 것이 행복한 사람처럼 그려진다. 그들이 어쩌지 못해 세상의 부조리를 울컥하는 마음으로 맞서는 것을 그려내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대리만족을 하고, 그런 영화들이 흥행한다. 소시민이라는 말, 돈 있는 자들은 돈이 있기 때문에 못 느끼지만 돈이 없고 힘이 없기 때문에 더욱 세상의 작은 것을 소중히 할 수 있다는 그런 논리들이 일반적이며 진짜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가?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행복을 모르고 주변에서, 가족에게서 돈으로 만들어진 허영심 가득한 세상에 정에 굶주린 주인공쯤 하나 있어서 가난하지만 희망에 가득 찬 상대방을 만나 서서히 변해간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세상의 단면이다. 내가 세상을 보던 이런 단면들을 한 순간에 무너뜨린 것이 바로 스피리추얼 코칭이다.
‘돈 주는 만큼만 일하지 뭐…’‘나를 알아주는 만큼만 저 사람을 대하지 뭐…’ 내가 더 열심히 일해도 말 많은 인간들 상대하지 않으면 되고, 나는 잘 해주고 진심으로 대하는 데도 욕심으로 나를 대하는 저런 사람들은 만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만들어낸 무수한 생각들이, 무서울 정도로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생각은 해 보지도 못했다. 우선은 상대방이 저렇고, 환경이 그렇다고 생각했으니까…
원효대사가 저녁에 맛있게 먹은 물이 썩고 냄새나는 해골바가지의 물인 것을 보고 구역질을 하며 전날 마신 해골 물을 토해내다 문득 깨달음이 있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은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깊이 있는 깨달음의 내용은 알지 못하고 그저 단순히 환경에 대한 나의 생각을 행복하게 바꾸는 정도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
물이 반이 담긴 컵을 볼 때 ‘컵에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라고 하지 말고,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고 하면서 즐거운 마음을 내도록 하라’는 말을 학교에서도 라디오나 TV에서 종종 들었다. 그래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환하는 것의 중요성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하지만 그저 ‘마음을 바꾸고 즐겁게 살도록 노력해요’의 정도가 아니라, 내 안의 근원의식에서 깊게 우러나오는 즐겁고 행복한 느낌으로 물질의 분자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인생에서 무언가 ‘이건 아닌데, 왜? 이러고 살고 있지!!’라고 고민하던 사람에게는 의아하지만 깊이 있게 다가갈 것이라고 여겨진다. 누군가는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는 것도 내 생각이기는 하지만, 나는 나의 생각과 한계가 있는 현실, 남과 나를 구분하던 자그마한 나라에서 이제 탈출하려고 한다.
한계 많던 나에서 무한 자유의 나로
몸이 탈출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교육 받아서 쌓아온 한계 많던 나, 지금까지 경험했다고 생각해서 정의했던 나에 대한 생각을 전환하여, 한계 없는 자유로움, 싱싱한 생명이 나의 본질임을 느끼려고 한다. 같이 코칭 받으면서 많은 변화를 보여준 와이프가 며칠 전에 이런 얘기를 했었다.
“누군가를 보고 짜증이 나는 건 가지고 있을 일말의 가치도 없는 생각들이야. 내가 그런 안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으면 저 사람이 손해인지 내가 손해인지 생각해 봐. 나는 싱싱하고 탁월한 존재이며, 싱싱하고 싱그러운 생명인데 이런 짜증나고 스트레스받는 기분을 내면 나에게 도움이 안 돼. 없어져라! 이 나쁜 감정들아! 나는 행복함만 느끼는 행복이며, 샘솟는 즐거움이다. 아하하하.”
코칭 받으면서도 처음에는 ‘나는 머리감고 여름에라도 찬바람 쐬면 곧바로 머리에서 열이 나면서 으슬으슬 추워져’‘고기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돼’‘피곤하면 잇몸이 부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생각이 올라오는 순간 순간, 옆에서 아내가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 정말 있다니까. 그럼 누가 가장 손해일까?”하고 즉시 피드백을 해 준다. 어떨 때는 참으로 잔인하게 나를 일깨워 주면서 옆에서 생각으로만 코칭을 받아들이고 있는 나에게 둘도 없는 동지가 되어 주는 아내의 변한 모습이 자극으로 다가오면서 깊은 생각의 전환을 체험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아침에 머리 감으면서도 ‘오늘 바람이 많이 불어서, 밖에 나가면 에어컨 바람 때문에, 아님 겨울이라서 찬바람이 나서’라고 하면서 감을까 말까를 망설였다. 삼겹살을 일주일에 두어번 먹었다고 하면 소화가 안 된다고 배를 탕탕 치면서 꺽꺽대고 있었을 테고, ‘피곤하면 잇몸에서 피가 나’라는 생각에 염증에, 입냄새까지 달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시험만 보면 늘 결과가 안 좋아’라는 생각에 열심히 했지만 언제나 고배만 마시는 낙방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제일 아래 단계인 기능사시험부터 기사시험, 거기에 조금 더 높은 시험에 도전하면서도 예전처럼 ‘어려워, 그거 힘든 거야, 몇 명 안 뽑는데’라는 말에 휘둘리고 불안해했을 것이다. 이제는 ‘몇 명이 되던지 뽑기는 뽑을 거 아니야? 그 몇 명이 바로 나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한 번 형성된 생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누군가 바꾸려고 하면 버럭 화부터 내는 옛날의 자그마한 생각을 나라고 믿고 있던 나에게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무한 자유와 무한 사랑으로 행복해지려 한다.
요즘 하우스 복숭아 수확이 한창이다. 노지 복숭아도 제법 영글어 한 두 개 정도는 맛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여름이 한껏 무르익어 가고 있다. 과일나무를 키우다 보면 과일나무들이 보다 싱싱한 열매를 위하여 다 익지도 않은 다른 열매를 스스로 바닥에 떨어뜨리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과일나무가 자신을 지키고 다른 열매들을 맛있게 키우기 위해 포기하는 열매들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진정한 나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이렇게 말을 시작하면, 대를 위한 소의 희생쯤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포기하겠다는 것은 정말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다. 나라고 느끼고 나에 대한 정의로 가득했던 조그마한 세계의 자그마한 나라는 존재의 생각을 버리겠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정말 거창한 말이 아닌가!
조그마한 나로부터의 탈출
영화에서 그려지는 소시민(小市民)의 일상은 세상을 깔보지 않고 조그마한 것들에게서도 행복을 느끼며 자신의 주변의 것을 소중히 하는 것이 행복한 사람처럼 그려진다. 그들이 어쩌지 못해 세상의 부조리를 울컥하는 마음으로 맞서는 것을 그려내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대리만족을 하고, 그런 영화들이 흥행한다. 소시민이라는 말, 돈 있는 자들은 돈이 있기 때문에 못 느끼지만 돈이 없고 힘이 없기 때문에 더욱 세상의 작은 것을 소중히 할 수 있다는 그런 논리들이 일반적이며 진짜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가?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행복을 모르고 주변에서, 가족에게서 돈으로 만들어진 허영심 가득한 세상에 정에 굶주린 주인공쯤 하나 있어서 가난하지만 희망에 가득 찬 상대방을 만나 서서히 변해간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세상의 단면이다. 내가 세상을 보던 이런 단면들을 한 순간에 무너뜨린 것이 바로 스피리추얼 코칭이다.
‘돈 주는 만큼만 일하지 뭐…’‘나를 알아주는 만큼만 저 사람을 대하지 뭐…’ 내가 더 열심히 일해도 말 많은 인간들 상대하지 않으면 되고, 나는 잘 해주고 진심으로 대하는 데도 욕심으로 나를 대하는 저런 사람들은 만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만들어낸 무수한 생각들이, 무서울 정도로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생각은 해 보지도 못했다. 우선은 상대방이 저렇고, 환경이 그렇다고 생각했으니까…
원효대사가 저녁에 맛있게 먹은 물이 썩고 냄새나는 해골바가지의 물인 것을 보고 구역질을 하며 전날 마신 해골 물을 토해내다 문득 깨달음이 있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은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깊이 있는 깨달음의 내용은 알지 못하고 그저 단순히 환경에 대한 나의 생각을 행복하게 바꾸는 정도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
물이 반이 담긴 컵을 볼 때 ‘컵에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라고 하지 말고,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고 하면서 즐거운 마음을 내도록 하라’는 말을 학교에서도 라디오나 TV에서 종종 들었다. 그래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환하는 것의 중요성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하지만 그저 ‘마음을 바꾸고 즐겁게 살도록 노력해요’의 정도가 아니라, 내 안의 근원의식에서 깊게 우러나오는 즐겁고 행복한 느낌으로 물질의 분자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인생에서 무언가 ‘이건 아닌데, 왜? 이러고 살고 있지!!’라고 고민하던 사람에게는 의아하지만 깊이 있게 다가갈 것이라고 여겨진다. 누군가는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는 것도 내 생각이기는 하지만, 나는 나의 생각과 한계가 있는 현실, 남과 나를 구분하던 자그마한 나라에서 이제 탈출하려고 한다.
한계 많던 나에서 무한 자유의 나로
몸이 탈출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교육 받아서 쌓아온 한계 많던 나, 지금까지 경험했다고 생각해서 정의했던 나에 대한 생각을 전환하여, 한계 없는 자유로움, 싱싱한 생명이 나의 본질임을 느끼려고 한다. 같이 코칭 받으면서 많은 변화를 보여준 와이프가 며칠 전에 이런 얘기를 했었다.
“누군가를 보고 짜증이 나는 건 가지고 있을 일말의 가치도 없는 생각들이야. 내가 그런 안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으면 저 사람이 손해인지 내가 손해인지 생각해 봐. 나는 싱싱하고 탁월한 존재이며, 싱싱하고 싱그러운 생명인데 이런 짜증나고 스트레스받는 기분을 내면 나에게 도움이 안 돼. 없어져라! 이 나쁜 감정들아! 나는 행복함만 느끼는 행복이며, 샘솟는 즐거움이다. 아하하하.”
코칭 받으면서도 처음에는 ‘나는 머리감고 여름에라도 찬바람 쐬면 곧바로 머리에서 열이 나면서 으슬으슬 추워져’‘고기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돼’‘피곤하면 잇몸이 부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생각이 올라오는 순간 순간, 옆에서 아내가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 정말 있다니까. 그럼 누가 가장 손해일까?”하고 즉시 피드백을 해 준다. 어떨 때는 참으로 잔인하게 나를 일깨워 주면서 옆에서 생각으로만 코칭을 받아들이고 있는 나에게 둘도 없는 동지가 되어 주는 아내의 변한 모습이 자극으로 다가오면서 깊은 생각의 전환을 체험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아침에 머리 감으면서도 ‘오늘 바람이 많이 불어서, 밖에 나가면 에어컨 바람 때문에, 아님 겨울이라서 찬바람이 나서’라고 하면서 감을까 말까를 망설였다. 삼겹살을 일주일에 두어번 먹었다고 하면 소화가 안 된다고 배를 탕탕 치면서 꺽꺽대고 있었을 테고, ‘피곤하면 잇몸에서 피가 나’라는 생각에 염증에, 입냄새까지 달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시험만 보면 늘 결과가 안 좋아’라는 생각에 열심히 했지만 언제나 고배만 마시는 낙방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제일 아래 단계인 기능사시험부터 기사시험, 거기에 조금 더 높은 시험에 도전하면서도 예전처럼 ‘어려워, 그거 힘든 거야, 몇 명 안 뽑는데’라는 말에 휘둘리고 불안해했을 것이다. 이제는 ‘몇 명이 되던지 뽑기는 뽑을 거 아니야? 그 몇 명이 바로 나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한 번 형성된 생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누군가 바꾸려고 하면 버럭 화부터 내는 옛날의 자그마한 생각을 나라고 믿고 있던 나에게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무한 자유와 무한 사랑으로 행복해지려 한다.